검은 옷의 여인

Uriah Heep

Lady in black


창밖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이 가슴을 스친다. 1971년의 먼지 쌓인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가, 반세기 넘는 시간을 건너뛰어 오늘 우리의 귀에 다시 속삭인다. 유라이어 힙(Uriah Heep)의 「Lady in Black」.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홀로 서 있는 한 남자에게 다가오는 이야기다. “She came to me one morning, one lonely Sunday morning…” 그 선율은 베트남의 정글을 뚫고 흘러나오던 포성처럼, 아니 그보다 더 깊이 파고들어 인간의 내면을 건드렸다.

 

1970년대 초, 세상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베트남의 늪지에서 젊은이들이 명분 없는 전쟁에 스러져가고, 미국의 거리에서는 반전 시위가 불타올랐다. 그 혼돈 속에서 켄 헨슬리(Ken Hensley)는 펜을 들었다. 전쟁터를 헤매던 한 남자가 파괴와 증오의 연속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마주친 존재, 바로 검은 옷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묻는다. “너의 적은 누구냐?” 남자는 처음에는 외부의 적을 가리키지만, 결국 깨닫는다. 진정한 적은 상대방의 가슴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가슴속에 도사린 폭력과 증오라는 것을. 여인은 미소 짓는다. 복수 대신 평화를 선택하라고.

 

그 여인은 죽음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치유의 손길이었다. 검은 옷은 고통의 끝을 암시했고, 그녀의 말은 증오의 사슬을 끊는 열쇠였다. 전쟁은 외부에서 시작되지만, 진정한 적은 내면에 있다는 깨달음. 그 노래는 베트남 전쟁의 비극을 넘어 모든 시대의 전쟁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왜 우리는 서로를 죽이는가, 왜 우리는 평화를 두려워하는가.

 

그리고 지금, 2026년의 봄. 지구 반대편에서 또 한 번의 데자뷔가 펼쳐진다. 2월 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이 이란의 심장을 찔렀다.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숨지고, 수많은 도시가 불타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며 세계는 숨을 죽인다. 테헤란의 거리에서는 여전히 알-쿠드스 행진이 이어지지만, 그 뒤로는 수백만 명의 피난민과 잿더미만 남았다. 시아파의 순교 이념이 다시금 불꽃처럼 타오른다. 이맘 후세인의 카르발라에서 시작된 그 피의 서사. 억압에 맞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신성한 의무라는 믿음은 오늘날 헤즈볼라와 후티, 이라크의 민병대들에게까지 이어져 ‘저항의 축’이라는 이름 아래 무기를 들게 한다.

 

그러나 그 순교의 이름으로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헐벗고 죽음의 그림자 속으로 내몰린다. 아이들은 학교 대신 지하 벙커에서 잠을 청하고, 어머니들은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울부짖는다. 순교라는 고귀한 이상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무고한 생명을 제물로 바치고 있다. 과거 베트남의 정글에서처럼, 오늘 이란의 사막에서조차 증오는 증오를 낳고 복수는 더 큰 복수를 부른다. “너의 적은 누구냐?” 그 옛 질문이 다시금 메아리친다.

 

테헤란의 폐허 속을 걷는 한 젊은이, 사미르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는 불과 몇 주 전까지 최고지도자의 목소리를 가슴에 품고 총을 들었던 전사였다. 하지만 2026년 3월의 어느 새벽, 폭격의 먼지가 가시지 않은 외로운 일요일 아침에 그는 길을 잃었다. 무너진 벽돌 사이로 무릎을 꿇은 그에게 검은 옷의 여인이 다가온다. 그녀의 발걸음은 소리 없이, 그러나 존재감만으로 세상을 가득 채운다. 그녀는 묻는다. “너의 적은 누구냐?” 사미르는 처음에는 외친다. “미국이다,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목소리가 떨린다. 여인은 고개를 젓는다. “아니, 네 안에 있는 그것이다. 증오와 복수의 불꽃, 그것이 너를 그리고 네 백성을 이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여인은 사미르에게 하메네이가 빌려온 후세인의 이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한 후세인은 불의에 맞섰으되, 그 끝에서 복수보다 고귀한 희생과 사랑을 남겼음을 일깨운다. 순교의 불꽃이 타오를수록 테헤란의 거리는 더 많은 눈물로 젖어 들 뿐이라는 사실을 여인은 고요히 응시한다. 사미르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하다. 복수 없이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그의 절규에 여인은 별처럼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복수는 또 다른 카르발라를 만들 뿐이며, 진정한 위로는 증오의 사슬을 끊는 데서 온다고 말이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온다. 테헤란의 폐허에서, 베이루트의 골목에서, 가자의 모래사막에서, 그리고 1971년의 레코드판에서 “Ah-ah-ah”라는 합창이 울려 퍼진다. 그것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수많은 영혼이 함께 부르는 기도였다. 순교의 이름으로 싸우던 자들조차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인다. 사미르는 총을 내려놓는다. 그의 손에서 먼지가 흩어지며 처음으로 가벼운 숨을 내쉰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포탄이 떨어지고 미사일이 날아든다. 그러나 그 노래는 여전히 속삭인다. 검은 옷의 여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시대를 초월해 모든 전쟁터의 어둠 속에서 기다린다. 누군가 그녀의 손을 잡을 용기가 생길 때까지. 악은 악으로 이길 수 없다. 오직 사랑과 용서만이 어둠을 밝힐 수 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빌려 오늘 우리는 다시 되뇌어본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사랑이 시작되는 문이며, 진정한 순교는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증오를 용서하는 것임을.

 

그 여운이 가슴에 스며들 때, 어쩌면 우리는 모두 조금 더 나은 새벽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테헤란의 하늘에 별 하나가 더 밝게 빛나는 그날을 꿈꾸며,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고 그 바람 속에 고통받는 모든 영혼이 한데 어우러져 노래한다. 우리는 결코 홀로 서 있지 않다. 검은 옷의 여인이 다시 찾아올 그날, 우리 가슴속의 전쟁도 마침내 멈추기를 소망해 본다.



작성 2026.08.23 07:22 수정 2026.08.23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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