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약속 장소를 잡을 때 이곳이 형광등 백색광인지 아니면 주황색 간접조명인지 로드뷰까지 켜서 조명 밝기부터 계산해 본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맞은편에서 쿡 찌르듯 묻는다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어머 어떻게 알았느냐며 웃음을 터뜨릴 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들뜬 파운데이션을 쿠션 팩트로 덮겠다고 세면대 앞에서 퍽퍽 두드리다 결국 떡이 져서 오늘 갑자기 급체했다며 이불 속으로 숨어버렸던 그 씁쓸한 기억 때문입니다. 낮에는 마스크 뒤로 울긋불긋한 살결을 숨기며 태연한 척 버텨내다 식구들이 다 잠든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조용히 스마트폰을 켜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모이는 곳은 인플루언서의 화려한 피드가 아닙니다.
네이버 피부염 환우 카페의 새벽 하소연 게시판이나 소규모 공방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그리고 제작자의 블로그 비밀 댓글 창입니다. 이곳의 대화는 흔한 뷰티 채널의 감탄사와는 차원이 다른 웃픈 흑역사 배틀로 돌아갑니다. 좋다는 앰플에 수분크림까지 여섯 개를 정성껏 겹쳐 바르고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 베개 커버가 얼굴에 쩍 달라붙어서 떼어내느라 식은땀을 뺐다는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분명 T존에는 프라이팬을 올려도 될 만큼 개기름이 번들거리는데 하품 한 번 시원하게 하면 볼 안쪽이 마른 가죽처럼 쩍 갈라지며 살점이 찢어지는 느낌이라는 호소도 이어집니다.
알코올 잔뜩 든 삼 초 흡수 토너의 산뜻함에 속아 피부 속 수분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그 조여오는 속당김을 잡겠다고 화장대 위에 병 수를 탑처럼 쌓아 올리다 제 손으로 피부 장벽을 폭파해 버린 이들의 눈물겨운 자폭담입니다. 그런데 이 침울하던 방의 분위기를 단숨에 뒤집어 놓은 것은 브랜드를 만든 제작자의 어처구니없는 고백 한 편이었습니다. 여러분 저희 제품을 써도 내일 아침 아이돌 피부는 되지 않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화학 유화제 없이 천연으로만 만들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다음 날 출근해서 보니 물과 기름이 완벽하게 별거 중이었습니다.
흔들어도 섞이지 않아 원료 드럼통 한 바가지를 통째로 하수구에 쏟아버렸고 대기업 연구원들이 왜 그 성분을 때려 넣는지 뼈저리게 배웠다는 글이었습니다. 완벽한 효능을 자랑하기는커녕 자연 원료로 버티다 맞닥뜨린 처참한 실패를 있는 그대로 까발린 셈입니다. 그 허심탄회한 글 아래로 댓글 수백 개가 쏟아졌습니다. 제작자님 멘탈은 괜찮으신지 묻는 걱정부터 나만 화장품 사 모으다 통장이 털린 게 아니었다는 헛웃음과 안도감이 터져 나오며 방은 순식간에 유쾌한 수다방으로 변했습니다. 나 역시 화장품을 싹 갖다 버리고 미온수 세안에 단순한 성분 딱 하나만 남겼더니 얼굴 붉은 기가 가라앉았다는 경험담도 올라왔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얼굴에 쏟아부은 화학 물질이 몇 년 치인데 피부도 숨 좀 쉬어야 하니 조급해하지 말자는 다독임도 이어졌습니다. 비싼 크림을 사라고 영업하는 대신 서로의 지친 피부를 다독이며 화장대를 비워내는 피부 다이어트의 연대가 싹튼 것입니다. 대기업이 수억 원짜리 광고로 도배한 번쩍이는 라벨보다 내 처참한 실패를 알아주고 함께 웃어넘겨주는 사람들의 댓글 한 줄이 훨씬 강력한 치유제였습니다.
바르는 병 수를 과감히 줄이고 자극적인 화학 성분을 덜어내며 피부 본래의 힘을 가만히 기다려주는 시간입니다. 사람들은 비로소 세면대 거울 앞에서 모공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자신을 심문하던 가혹한 강박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화면 속 번지르르한 광고판 대신 폐쇄형 커뮤니티와 블로그 한구석에서 무너진 내 피부의 아픔에 함께 웃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들의 온기 속에 진짜 회복의 길이 있습니다.
화려한 성분의 덧칠을 멈추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을 때 비로소 피부는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설민규 대표는 수하코스메틱의 대표이자 건강뷰티큐레이터로서 천연화장품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전문메디컬코스메틱회사에서 쌓은 4년간의 경력을 바탕으로, 50여 곳의 피부과와 성형외과 원장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코칭과 컨설팅을 진행해왔다. 100여 건의 피부 관련 병원 및 업체 담당자 제품시연과 코칭을 통해 현장 중심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서울 피부과 학술세미나 및 포럼에서 상담 및 부스참여의 경험으로 현재 친환경적이고 건강한 뷰티 솔루션을 추구하며, 현재 비건 기초화장품 및 필링제품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자체 개발한 천연 화장품을 통해 건강한 아름다움을 전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