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오는 10월 1일부터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기증품 국외순회전 《한국: 2000년 창의의 여정 Korea: 2,000 years of creativity》을 개최한다.
이번 국외순회전은 2021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의 국가 기증을 기념해 두 기관이 공동 기획한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2022)를 바탕으로 마련됐다. 앞서 2025년 11월 미국 워싱턴 D.C.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와 2026년 3월 시카고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의 국보: 한국미술 2000년》을 성황리에 마친 데 이어, 영국박물관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전시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총 79건 164점과 국립현대미술관 15건이 출품되며,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국보 〈대구 비산동 청동기〉 등 국보 10건 27점과 보물 13건 23점이 포함되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층 폭넓게 조명한다.
영국박물관의 상징적 공간인 중앙 중정(The Great Court)에 면한 전시실에 유구한 한국 역사를 관통하는 타임 터널이 들어선다. 시대별 주요 유물을 따라 터널을 걷다 곁길로 들어서면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방이 펼쳐져 각 시대의 문화유산을 깊이 감상할 수 있다.
1부 부와 권력(Wealth and Power)에서는 초기 철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의 고고 유물과 삼국시대 불교미술품을 통해 생산력 증대와 부의 축적에 따른 한국 고대 국가의 정치권력 형성과 발전을 살펴본다. 앞선 두 차례 미국 순회전과 달리 고고 유물을 강조해 〈날개 모양 관꾸미개〉, 〈금동신발〉, 〈토우 장식 토기〉 등 삼국시대 금속공예품과 토기를 선보인다.
2부 지혜와 아름다움(Wisdom and Beauty)은 고려시대 불화와 사경, 청자와 금속공예품에 담긴 기술력과 세련된 미감, 고상한 취향을 조명한다.
3부 배움과 즐거움(Learning and Pleasure)은 조선시대 유학자의 학문과 수양, 삶의 가치를 살펴보고 정선의 〈인왕제색도〉, 김홍도의 〈추성부도〉 등 조선 후기 회화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공간이다. 마지막 4부 개성과 사회(Individuality and Community)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영국박물관이 소장한 박수근·김환기·이중섭·장욱진 등의 작품으로 대한제국 시기부터 오늘날까지 격변 속에서 살아온 개인과 공동체를 조명한다.
미국 전시가 고 이건희 회장의 국가 기증과 미술의 공공 향유에 주목했다면, 이번 《Korea》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집중해 그 역사적 흐름을 따라 한국 문화의 정수를 찾는다.
세계적인 K-컬처 열기는 이번 전시에서 한국미술의 오랜 전통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인기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한 〈일월오악도〉와 〈까치와 호랑이〉가 대표적이다. 강렬한 색채와 상징성이 돋보이는 〈일월오악도〉는 전시 포스터를 장식하며, 한국 특유의 해학과 생동감을 담은 〈까치와 호랑이〉는 이번에 처음 출품된다. 워싱턴 D.C. 전시에서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뮷즈(MU:DS)’가 판매 일주일 만에 완판된 데 이어, 영국박물관도 두 작품을 활용한 문화상품을 개발했다. 2024년 뉴진스 오디오 가이드 투어와 올 7월 BTS와 마련한 참여형 프로그램 〈코리아 갤러리 트레일〉로 K-컬처에 대한 관심을 한국 문화유산으로 확산해 온 영국박물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근현대미술은 한국화와 유화, 조각과 영상 설치를 아우르며 근대화 이후 한국미술의 역동적 변화를 보여준다. 1세대 여성 서양화가 백남순의 〈낙원〉(1936)은 동서양 화풍을 대담하게 결합한 8폭 병풍 형식의 유화다. 박수근과 장욱진은 서양미술의 형식과 재료를 자기화해 한국전쟁 무렵 서민의 삶을 담았으며, 박노수·박래현·박생광의 작품은 한국 회화 전통의 계승과 변모를 보여준다. 미국 전시에 없었던 높이 약 3.9m의 민중미술 대작, 신학철의 〈한국근대사-종합〉(1982-83)은 사회비판적 역사의식이 고양된 1980년대 한국미술의 단면을 보여준다.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 〈브람스〉(1993)는 서양 고전음악을 전자 기술·시각예술과 결합해 한국미술의 독창적 혁신성을 드러낸다.
영국박물관은 1984년 특별전 《한국미술 오천년》 이후 한국미술 전시에 관심을 기울이며, 2000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대여해 한국실을 활성화했다. 이번 전시도 한국 정부의 한국실 지원 사업이 맺은 결실이다. 영국박물관 소장 〈나전 국화 당초무늬 경전함〉과 이명기의 〈채제공 초상〉, 최근 수집한 강익중·이수경·서도호의 현대미술품도 함께 선보여 한국미술 컬렉션의 과거와 미래를 조명한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전시와 연계해 케임브리지대학과 런던대학 SOAS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한국 문화와 미술에 대한 강연을 할 예정이다. 워싱턴 D.C.와 시카고 강연의 큰 호응에 이어 이번 강연에도 현지의 관심이 벌써부터 뜨겁다.
유홍준 관장은 “미국의 워싱턴 D.C.와 시카고에서 큰 성공을 거둔 고 이건희 회장 기증품 국외순회전이, 영국에서는 더 많은 국보와 보물이 포함된 옹골찬 구성으로 새로운 한국의 이야기를 선보일 것”이라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K-컬처의 뿌리를 찾아 영국과 유럽 전역의 많은 K-컬처 팬들이 런던을 방문해 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